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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역사, 종교를 알아보자

 

티베트 역사

 

 

고대 티베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몇몇 역사가들은 최초의 티베트인은 버마어와 관련된 언어를 사용했던 몽골계의 유목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약 2500년 전에 이 곳에 도착하여 비옥한 남부 계곡에 정착했다.

 

600년대 초에 티베트인이 몇몇의 종족을 통합하여 200년 동안 중앙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왕국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왕에 의해 32세대 전에 창시된 왕조의 혈통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는 649년 까지 통치하였는데 티베트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티베트의 통치 지역을 네팔 지역 너머까지 확장하였다.

 

그는 또한 주민들에게 불교를 전파했는데 불교는 당시 왕권 신수설을 주장하던 본이라고 불리는 종교화 대치되었다. 그러나 이 고대 종교는 여전히 티베트 불교의 일부로 남아 있다. 티베트는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분열될때까지 200년 동안 중요한 국가로 남아 있었다.

 

여전히 본교를 숭배하고 강력한 군주가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반대하던 귀족 계급은 불교의 확장을 저지했다. 티베트 왕국은 그 후 서로 적대시 하는 소규모의 공국으로 분리 되었다. 1100년대에 불교는 티베트의 서부에서 다시 번성하였다. 1100년대 후반까지 라마교의 성직자는 넓은 영지를 얻을수 있었고 거대한 라마교 사원의 사원장이나 주지 스님들은 제왕과 비슷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수많은 라마교 종파 사이의 투쟁으로 황교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를 몽골식 이름인 달라이 라마라 했다. 몽골족의 도움으로 5대 달라이 라마는 라마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고 있던 티베트 왕조의 도전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1642년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처음으로 정신적, 정치적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고 티베트는 신권 정치 국가가 되었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와 그의 모든 후계자들을 자비로운 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업적 중에는 수도인 라사에 세운 유명한 포탈라궁전이 있다.

 

일찍부터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이웃인 중국인들의 위협을 받아 왔다. 결국 1720년 중국은 티베트를 그들의 보호령으로 선포하였다. 중앙 아이사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경쟁국인 영국과 소련도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1904년에 영국의 한 외교 사절이 티베트와의 교역 관계를 개설하였다.

 

티베트는 1912년 중화 인민 공화국의 창설에 따른 혼란을 틈타 독립을 되찾게 되었다. 13대 달라이 라마는 9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정부를 수립했다. 그는 전통적인 티베트 사회를 새롭게 할 것을 목쵸로하는 광범위한 개혁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는 국제법으로는 티베트의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대신에 그는 티베트의 험한 산악 지형에 의해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결과 1950년에 중화 인민 공화국의 인민 해방군이 라사로 진격했을때 세계는 침묵하였다. 중국은 티베트인들이 모국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봉건제도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수천명의 티베트인들이 죽었고 국내의 모든 사원들이 티베트의 전통 문화와 전통 사회를 파괴하려는 전쟁에 희생되었다. 1959년 달라이 라마는 또다시 고국을 떠나 인도로 망명하였다. 국내외에 살고 있는 600만여명의 티베트인들은 세계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해 언젠가는 달라이 라마가 돌아올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1951년 이후 티베트에 얼마나 많은 병원, 발전소, 도로, 학교 등이 건설되었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이와 같은 물질적인 진보가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의 손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951년 이후 티베트에 정착한 한족이 이런 개발 계획에 따른 모든 이익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문화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80년대에 중국은 개혁을 단행했고 일정조건하에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허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발생한 중국의 반정부 대중 시위로 이와 같은 관대한 정책은 중단되었다. 1990년대 초반 중국은 티베트 지역의 여행에 제재를 가하였고 그리하여 신비의 장막이 다시 한번 이 외딴 지역을 감싸게 되었다.

 

 

티베트 종교

 

 

티베트 불교 또는 라마교라고 하는 종교는 수많은 종파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의 기원은 기원전 50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불교의 창시자인 인도의 성인인 싯다르타(부처)가 삶의 어려움을 깨닫고 종교적 해탈을 추구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부처에게 모든 존재는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되풀이하는 과정의 일부분이었다. 세속적인 욕망을 버림으로써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과정을 초월하여 열반의 경지에 이를수 있다고 하였다. 티베트에서는 줄교의 설법과 자연에 깃들어 있는 영혼의 힘을 믿는 본이라는 신앙이 결합하여 독실한 종교 사회를 이루고 있다.

 

라마 불교에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라는 두명의 대 라마가 있다. 이 두명의 대 라마 중에서 달라이 라마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그는 티베트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티베트의 왕이며 신적 존재인 달라이 라마 다음으로 중요한 판첸 라마는 특별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그의 영혼은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몸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승려들은 라마가 죽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그들의 규정에 합당한 아이를 찾게 되면 이 아이가 죽은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2세때 그의 지위를 얻었는데 그때 수도승들은 그를 현세의 14대 아발로키테스바라(자비의 보살의 화신)이라 공표하였다.

 

1950년의 중국 공산당의 침략과 1959년 달라이 라마가 고국을 떠났을때 일어난 유혈충돌이 있기까지 불교는 티베트인들의 모든 생활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었다. 관습과 가족의 자부심 때문에 모든 가족 중에서 적어도 한 아이는 수도승이 되도록 강요되었다.

 

일부 소년들과 고아들은 3세나 4세에 이미 수도승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중국이 티벳트를 점령하기까지 티베트 남자의 20% 정도가 사원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승려들이 몇년간의 수도승 생활을 마치고 환속하거나 30대의 나이에 처음으로 수도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사원들은 자급 자족의 공동체를 형성했고 수도승들이 모든 가사일을 수행하였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처럼 티베트의 사원들도 지역 사회의 일상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천개에 달하는 티베트의 사원들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파괴되었고 후에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혁명의 내전으로 또다시 파괴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 120만명 이상의 티베트인들이 죽었으며 중국 군대가 사원에서 귀중한 동상, 그림, 불상 등을 마구 약탈해 갔다. 유명한 사원 가운데 단지 몇개만이 부서지지 않은채로 남아 있다. 세라, 간덴, 드레펑 사원이 티베트의 주요 하마교 집단인 게룩 파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원에는 한때 2만명이상의 수도승들이 거주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불과 몇백명 밖에 되지 않은 수도승들이 폐허가된 세라, 간덴, 드레펑 사원에 살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행정적, 종교적인 일들을 수행했던 웅대한 포탈라 궁전이 라사에 파괴되지 않은 채로 남아 우뚝 솟아 있다.

 

1645년 위대한 5대 달라이 라마가 건축한 이 거대한 궁전에는 의식을 거행하는 방, 법당, 묵상하는 방, 죽은 달라이 라마의 유품을 보과하는 8개의 저장실 등이 있다. 라사에는 모든 티베트의 성지 중 가장 신성한 조캉 사원이 있다. 시성한 장소의 주변을 걷는 관습은 티베트 종교에서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것으로 오늘날에도 순례자의 무리들이 조캉 사원을 거닐고 있다.

 

티베트의 사원에는 많은 불상이 있는데 어떤것은 웃고 있고 어떤 것은 화난 모습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화를 스스로 풀게 한다. 사원의 입구에는 지옥, 악마, 동물, 인간생활,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인 모습, 신을 그려놓은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진 윤회를 나타내는 인생의 바퀴하고 하는 그림이 가끔 보인다.

 

티베트 불교의 신도들은 사원과 거리에서 짧은 막대위에서 회전하는 작은 북 모양을 한 기도문이 들어 있는 통을 돌리며 옴 마니 파드메 훔 이란 기도문을 반복한다. 사원에는 향이 피워져 있고 등잔용 야크 기름을 사용하는 등잔불이 밝혀져 있다. 불교도들은 부처에게 꽃과 목도리를 제물로 바친다.

 

그리고 또 다른 제물의 형태는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이다. 많은 독실한 티베트인들은 멀리 남서쪽에 위치한 라사와 지가쯔 그리고 카일라스 산과 같은 신성한 장소로 먼 여행을 떠나는 순례를 행한다. 아름다운 카일라스 산은 해발 6714m 힌두 교도와 불교도 모두에게 신성시 되고 있다.

 

순례자들은 이 산을 도보로 순례하는데 보통 이틀 정도가 걸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을 기어서 순례하기도 한다. 이 어려운 순례는 약 15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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