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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역사를 알아보자

 

한반도 역사

 

 

한반도는 북위 40도 선에 위치하며 동아시아 연안으로부터 남동쪽으로 뻗어 나와 있다. 서쪽으로는 황해가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가 있다.

 

북으로는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길이는 한반도 전체 길이인 1078km의 반을 차지한다. 한반도는 위도 38선으로 대한민국(남한)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북한)으로 분단되어 있다.

 

비무장 지대 DMG로 알려진 38선은 한국 전쟁을 종결시킨 표시이다. 이 전쟁은 냉전 시기의 가장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곳 중 하나이며 한반도를 서로 적대시하는 두 체제로 나누어 놓았다.

 

 

남한과 북한은 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아주 상이한 정치적, 경제적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남한의 국토의 약 60%로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태백산맥이 동해안을 따라 솟아 있다.

 

태백산맥 연안을 따라가다 보면 불교 성지인 홍련암에서 동해를 저멀리까지 내다볼수 있다. 남쪽 끝으로는 이 산맥의 지맥들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며 바다에까지 이어져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섬들이 흩어져 있다. 서해안은 해안을 따라 넓은 근해와 개펄 그리고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한민족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인 약 3만년 전에 시작되었는데 이 때 한민족의 조상들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이들은 주로 사냥을 하였고 나무 열매와 꿀을 채취하며 생활했다.

 

예수가 탄생하기 훨씬 오랜 전에 고조선이라고 하는 최초의 부족 국가가 한반도의 북쪽 지역에 들어섰다.

 

오랜기간 동안 중국은 한반도의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한민족은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정치 제도를 전래 받았으며 문화적인 영향도 많이 받았다.

 

기원전 2세기에 반도의 북동쪽에 고구려가 나타났고 잇따라 남서쪽에 백제가 남동쪽에 신라가 각각 출현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하며 이 시기는 대한민국이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신라가 중국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660년대 다른 두 나라를 정복했다. 이어 신라는 당나라 군대까지 몰아 내고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다.

 

이후 통일 신라는 찬란한 문활르 꽃피웠다. 800년대에 지방 토호들이 일어나 혼란이 계속되던중 918년 왕건이 나라를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1295년에 몽골 제국이 한반도를 정복하여 한민족은 그들의 지내하에 놓이게 되었다. 1392년 이성계가 고려 말의 사회 혼란을 틈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신진 사대부와 무인 세력의 힘을 얻어 조선 왕조를 건국했다.

 

건국후 사대부들은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부국 강병을 꾀하는 등 국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그리하여 15세기에는 중앙 집권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학문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조선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지만 1900년대 초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존속하였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이 패배함으로써 일제의 식민 통치가 끝나고 대한민국은 1945년에 독립하였다. 이 때 소련군은 북쪽에 미군은 남쪽에 주둔했다.

 

1948년 남한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에는 두 개의 국가가 존립하게 되었다.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는데 이 전쟁에 미국, 중국 그리고 국제 연합(UN)이 개입 했다.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장악하고 남한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그러나 국제 연합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서서히 회복되었고 연합군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끈 과감한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쟁의 국면은 역전되었다.

 

국제 연합군은 1950년 9월에 서울을 수복하고 10월에는 북한으로 진격했다. 이 때 중공군이 개입하여 국제 연합군은 다시 밀려났다.

 

 

전쟁은 곧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고 1953년에 양 진영 간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면서 완충 지대로서 비무장 지대가 만들어졌다.

 

휴전 이후 오랫동안 공산 체제인 북한과 반공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남한의 유일한 접촉 장소는 국제 연합의 휴전 협정 지역에 있는 판문점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남한의 통일 외교 정책이 빛을 보게 되어 비록 일부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총리가 서로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는가 하면 스포츠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전쟁 후 남한은 민주적인 현대 자본주의 국가를 설립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여 오늘날 남한의 경제는 놀랄 만큼 성장하였다.

 

많은 국민들은 두세대가 채 지나지 않아 도시로 이주해 살고 있으며 서울의 전후 성장은 한국이 얼마 만큼의 규모로 변모했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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